창작과비평 2009년 가을호 <남북한 대운하에 대한 비판적 평가>



[특집] 한국사회, 대안은 있다


이명박정부 집권 이후 민주주의, 민생, 남북문제에서 그간 우리사회가 이룩한 성과들이 허물어지고 있다. 그와 더불어 이에 맞서는 ‘반MB전선’도 대중적으로 뚜렷하게 형성되었다. 특집에서는 서거정국 이후 재평가가 활발해진 노무현정부의 공과를 짚고 현재 진보개혁진영의 대안 논쟁에서 주목받는 ‘사회민주주의’와 ‘진보적 자유주의’를 중심으로 검토하는 좌담, 세계경제위기 속에서 동아시아·한반도 차원의 발전모델을 구상하는 ‘한반도경제’, 생활세계의 시장경제적 대안을 찾는 ‘사회적경제’, 기존의 제도정치적·사회운동적 담론을 대체하는 ‘생활정치’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특집1] 김대호·백승헌·주대환·김종엽 좌담 「이런 사회 이런 정치를 나는 원한다」는 노무현정부 평가를 시작으로 진보개혁진영의 자기성찰 속에서 폭넓은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대안적 비전·담론·정책은 무엇인지 토론한다. 아울러 한국사회의 민주주의와 총체적 개혁을 위한 여러 정치세력간 연합은 어떠해야 하며, 사회적 신뢰를 획득할 리더십은 어떻게 형성할지를 논의한다. 진보적 자유주의 대안을 주장하는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장)는 참여정부가 탈권위주의와 특권 타파에서는 성과를 올렸지만, 구체적 민생문제에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민주화과정에서 진보와 개혁을 외친 집단이 기득권층에 편입해 또다른 ‘이익집단’을 형성했음을 성찰하지 못하는 사이 민심이 등을 돌렸다는 것이다. 백승헌(민변회장)은 참여정부와 그 지지층의 관계에 주목하여, 사회적 요구와 구체적 정책의 괴리가 지지층의 이탈을 낳고 결국 정책 추진에 장애물이 되었다고 짚는다. 또한 노무현 서거 이후 긍정 일변도의 평가에 대해 무비판적·몰역사적 옹호로 기우는 것을 경계한다. 사회민주주의 대안을 주장하는 주대환(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은 참여정부가 민주화운동의 사고습관에 젖어 가속화되는 빈부격차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진보진영이 미래지향적 비전 없이 반대만 하는 집단으로 비치게 된 점을 비판한다. 김종엽(한신대 교수)은 참여정부가 현실의 사회경제 문제에 둔감해 지지층을 뒷받침하지 못했고, 민주주의를 절차와 형식의 문제로 국한한 점을 비판한다. 아울러 진보진영의 ‘노동자중심주의’가 새로운 자본축적에 대한 대응이나 비정규직 등의 민생대책에 소흘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대안과 그 실현방식에 대한 토론에서 주대환은 사민주의와 복지국가 프로젝트가 세계적으로 ‘공신력’있는 비전임을 강조하고, 이것을 중심으로 다양한 정치이념들의 합력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사회양극화와 각종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자유주의’ 정당으로서 미국 민주당 같은 단일정당으로의 결집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반면에 김대호는 사민주의의 구복지국가 해법의 한계를 지적하며 공정과 공평의 가치에 기초한 신복지국가 해법을 내놓는다. 이를 통해 건강한 전문직과 청년세대, 그리고 3비계층(비경제활동, 비정규직, 비임금)을 끌어안을 새로운 정당을 제안한다. 백승헌은 진보개혁세력 내부에 최소한의 공동 비전과 이견 조율능력이 세력연합, 선거연합에 필수적임을 밝히며, 리더십 구축에 대한 합의와 그 검증과정이 면밀해야 함을 강조한다. 김종엽은 어떤 비전이든 한반도의 분단체제 극복과 연결되어야 제도와 가치관의 개선은 물론 진보개혁세력의 갱신이나 합리적 보수층의 형성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통일과정에서 남북이 국가연합의 이행형태를 통해 미래의 체제를 서로 조율해가야 한다고 말한다.

[특집2] 이일영 「위기 이후의 대안, ‘한반도경제’」는 2008년 금융위기와 대불황으로 세계체제의 근본적 재편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동북아 냉전체제와 한반도 분단체제 역시 이행기에 직면해 있다는 진단으로 시작한다. 남북 각각이 급진적 이행의 위험을 막고 새 환경에 적응하는 경제체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국가인가 시장인가’의 이분법을 넘어 국가, 지역, 다양한 경제조직의 세 축이 조화를 이루어 운동하는 한반도 차원의 경제모델이 필요하다. ‘한반도경제’는 생산자뿐 아니라 소비자의 관점을 적극 도입하고, 공공적 안정성과 성장을 함께 추구하며, 시장과 기업 중간에 다양한 혼합형 조직들이 발전할 수 있는 경제생태계를 마련하는 게 필수적이다.

[특집3] 노대명 「사회적경제를 강화해야 할 세가지 이유」는 생활세계 전반에서 확산되는 민주주의 후퇴 및 박탈과 격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사회적경제’를 제출한다. 사회적경제란 자본 수익보다 일자리를 중시하고, 그것을 통해 사회적 연계를 형성하려는 협동조합, 공제조합, 시민단체, 사회적기업 등의 활동을 가리킨다. 공정무역, 지역화폐, 생활협동조합 등의 영역에서 연대의 가치를 가진 고용과 써비스를 창출하고 일상적 소비공간을 지역사회 소통의 장소로 변화시킴으로써 풀뿌리민주주의를 강화하기 위한 방안이 제시된다.

[특집4] 김현미 「신자유주의적 권위주의 국가와 생활정치」는 지난 촛불시위에서 나타난 생태적 차원의 민주주의, 사적 영역의 주제들의 공론화, 운동조직에 의해 주도되지 않는 자발성 등 ‘생활정치’라 부를 수 있는 새로운 감성과 형태의 대중운동이 이명박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권위주의 질서에 어떻게 대항해야 하는지 탐색한다. 정부가 시민의 정치적 자유와 지불능력을 등치시키고, 국민 내부에 위계와 범주를 정해 특정 부류에 대해 국가책임을 방기하는 속에서 삶의 불안정성은 급속히 높아지고 있다. 필자는 상호 공감과 교통을 요체로 한 ‘비경제적 상호공존의 회로’ 만들기가 시급함을 주장한다..

논단과 현장
김흥규 「신라통일 담론은 식민사학의 발명인가」는 최근 역사학 및 문학연구 일단에서 제출된 ‘신라통일’ 관념이 일본 근대역사학의 발명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비판하고, ‘삼국통일’ 담론이 신라에서 형성되어 조선후기까지 이어져왔음을 다양한 문헌들의 비교분석을 통해 실증한다. 비판의 대상이 된 윤선태·황종연은 일본 역사가 하야시 타이스께의 영향을 강조하기 위해 자강운동기의 다양한 역사서들을 논의에서 제외하고, 그의 입론을 과장 해석했으며, 7세기말 신라사 이래 고려사와 조선사에서 풍부하게 나타나는 삼국통일 담론을 외면했다. 이같은 ‘신라통일 발명론’은 부정확한 자료 확인과 무리한 논증 등 학술담론으로서 기초가 부실한 탓에 나온 실책에 가깝지만, 필자는 그 속에서 포스트콜로니얼리즘 논의가 근대와 식민주의를 특권화하고 전근대와 근대 사이의 복잡한 작용과 중층성을 단순화시킴으로써 우리 학계와 지식인사회에 미치는 위험성을 강력히 경고한다. 역사연구에서 전근대의 유산과 기억이라는 요인은 경시하고, 근대 시공간에서 식민주의 헤게모니에 지나친 방점을 찍는 논법이 역사이해의 왜곡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라디카 데싸이 「베너딕트 앤더슨이 놓친 것과 얻은 것」은 1983년 초판 출간 이래 2006년 2차개정판이 나올 정도로 지속적인 영향력을 미치며 탈민족주의 담론을 세계적으로 확산시킨 베너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의 학문적·정치적 맹점을 짚는다. 필자는 앤더슨의 민족주의 연구가 자본주의 근대의 지정학적 의미와 민족주의를 연관해 사고하게 하고, 민족주의의 기원을 유럽이 아닌 아메리카대륙에서 찾으려는 시도로 다양한 민족주의 이론이 성립할 가능성을 열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상상의 공동체』는 정치경제적 문제보다는 문화적인 개념에 경도되고 맑스주의 민족이론을 왜곡함으로써 민족이 엄연한 물질적 현실임을 은폐하고 학문의 우경화를 낳았다고 본다. 또한 제3세계 민족주의운동이 유럽의 모델을 따르는 구성물에 불과하다고 규정해 정통성을 상실케 함으로써 진보정치가 민족문제를 중심으로 신자유주의에 반격할 필요가 절실한 시점에 동력일 잃게 만들었다고 비판한다.
황진태 「남북한 대운하에 대한 비판적 평가」는 2007년 겨울 본지에 실린 도시건축가 김석철의 ‘남북한 대운하’에 대한 비판이다. 이명박정부의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반대가 뜨거운 와중에 발표된 ‘남북한 대운하’안에 대해 필자는 경제적·환경적·사회적 측면에서 이 구상의 지속가능성을 꼼꼼하게 따져보며 진보개혁진영에 좀더 생태적이고 합리적인 공간전략 논의를 주문한다.

문학평론∙문학초점
김수이 「노래가 된 시, 노래가 된 시인 」은 작고 10주기를 맞은 故 조태일 시인의 시세계를 2000년대 우리 문학상황에서 반추하는 글이다. 70, 80년대 민중시의 대표자 격인 조태일 시가 ‘연가’에서 ‘찬가/비가’로, 그리고 자연서정으로 옮겨가는 행로에 주목해 강렬한 사회의식과 역사적 소명감이 지금의 미학적·인식론적 모험을 감행하는 젊은 시와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풀어낸다.
강동호 「존재론적 비명으로서의 시적인 것」은 최근 우리 문단의 중심 화두인 문학과 정치의 관계성을 ‘시적 언어’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물음으로 이어간다. 시의 언어는 현실의 ‘투명한 재현’에 실패하는 순간 정형화된 언어와 삶 자체를 회의하도록 만드는 역설적 존재임을 드러낸다.
정혜경 「소설 형식의 시국선언과 기억의 윤리 」는 올 상반기 한국문학의 최대 화제작인 공지영 장편소설 『도가니』가 불러일으키는 대중적 공감을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공분(公憤)과 윤리적 각성으로 분석한다. 강렬한 현실의식과 선 굵은 캐릭터가 속도감있는 진행과 감정이입을 돕지만 선명한 서사적 대립구도 등의 형식상 문제점도 지적한다.
박수연·신형철 ‘시선과 시선’은 창비시선 300번 기념시집에 대한 상반된 견해를 펼친다. 박수연은 이른바 ‘창비적 관점’이 “사람과 사람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에 다름아니며, 그 애정을 불가능하게 하는 제도와 권력에 맞서는 과정에서 생겨난 심미적 자세라고 옹호한다. 또한 언어적 모험을 최우선의 미적 척도로 세우는 경향에 대해 ‘새로움의 강박’을 넘어 우리 현실에 즉한 시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신형철은 창비시선의 ‘민중적 서정시’ 기조가 정치적 진보주의와 미학적 보수주의의 결합을 낳았다고 판단하며, 예전의 민중주의가 지금은 대중주의로 비판받을 수 있음을 상기한다. 문학은 언어를 변혁함으로써 인간과 제도의 변혁에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창작ㆍ촌평
창작에서는 역사소설의 품격과 흥미를 더하는 김연수의 연재가 3회를 맞이하며, 이호철, 배수아, 윤고은이 각각 개성적인 소설세계를 펼쳐나가는 단편을 실었다. 시단에서는 고형렬 김기택 김경주 최정례 등 11인의 신작시들이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촌평에서는 정태인이 칼 폴라니의 고전적 저작 『거대한 전환』을 소개하면서 자본주의 대안 탐색의 유력한 길을 안내하며, 백영서는 『역사학의 세기』를 통해 탈근대론의 시각에 비친 한일 역사학계의 이론적 지형을 비판적으로 점검한다. 또한 김성호는 슬라보예 지젝 스스로 자신의 대표작이라 칭한 『시차적 관점』에서 지젝 사유의 특징과 매력을 알기 쉽게 풀어낸다.

by 샤방샤방 | 2009/08/18 18:07 | 공간+지리 | 트랙백 | 덧글(0)

서평: State Power: A Strategic-Relational Approach/황진태





<특집논문: 환경정책과 토건주의>

이명박 정부의 ‘녹색 뉴딜’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지속 가능한 발전, 관류 혁신 그리고 생태적 뉴딜/조영탁

한국에서 토건국가 출현의 배경:
정치적 영역화가 토건지향성에 미친 영향에 대한 시론적 연구/박배균

한국의 물 산업 민영화 논쟁에 대한 경험적 검토/이상헌


<특별기고논문>
토건국가를 넘어:
대체적(代替的) 지역 개발과 일본의 경험/宮本憲一(Miyamoto kenichi)·번역 박경
일본의 공공사업 및 반대 운동의 개관과 현 단계/碇山 洋(Ikariyama Hiroshi)·번역 박경


<일반논문>
지정학의 재발견과 비판적 재구성: 비판지정학/지상현·콜린 플린트
정부-주민 간 갈등 해소 영향요인에 관한 비판적 고찰/김두환


<서평>
『부동산 권력』과 『위기의 부동산』/한동근
State Power: A Strategic-Relational Approach/황진태

by 샤방샤방 | 2009/07/16 12:15 | 서평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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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위논문으로 인하여 당분간 글쓰기를 쉽니다.

by 샤방샤방 | 2009/07/03 23:33 | 트랙백 | 덧글(1)

'듣보잡' 현상과 진보의 위기

광장의 열기를 일상에서 견고하게 만들어야

"혹시 인원이 적으면 어떡하지, 경찰은 차벽을 쌓았을까, 빨리 도착해야 할 텐데…."

지난 6월 10일 저녁, 2호선을 타고서 서울시청으로 향한 길에 오만가지 걱정을 했던 필자의 다급함은 서울시청에 도착해서 많은 시민들의 참여를 보고서는 이내 사라졌다. 여전히 시민들은 작년의 촛불을, 1987년의 눈물을 잊지 않고 있었다.

달라진 점도 있었다. 지난해 촛불집회의 동기가 '미친 소'라는 의제가 압도적이었다면, 올해 6·10 집회에서는 현 정권을 겨냥한 총체적인 비판과 더불어 쌍용자동차, 한국예술종합학교, 용산 참사, 대운하, 광장 조례 등의 다양한 의제들이 광장과 거리에서 공존하였다.

흥겨운 집회의 공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밤 11시가 지나 야당 의원들이 빠져나가면서 경찰들이 서울광장과 도로에 있었던 시민을 삽시간에 도로 밖으로 내몰았다. 추측컨대 작년 촛불 집회의 학습 효과로 경찰국가 한국의 경찰들은 시가지에서 사회운동을 저지하는 반복 훈련을 받았던 거 같다. 만약에 이날 집회 참여 인원이 작년 6월 10일처럼 광화문에서 남대문까지 촛불로 가득 찼더라면 경찰들의 진압 작전이 수월하게 진행되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더 많은 인원에 대한 아쉬움이 남음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논쟁적인 반문을 던질 수 있다.

"더 많은 인원이 모였다고 하자. 그래서? 그래서 뭐가 해결되는데?"

시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하는 선천성 난청증 걸린 현 정권과 소통하길 원하는 시민들은 벽에 부닥치고 있다. 그렇다고 거리의 정치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다행히도 광장과 거리에서 시민들은 쌍용자동차, 운하, 용산 참사 등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다양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이 소통의 공간은 정당 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 설 수 있는 급진적 민주주의가 자랄 수 있는 훌륭한 토양으로 일궈지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광장에서의 소통의 열기를 어떻게 "광장", "거리"라는 제한된 지리적 규모를 넘어서 어떻게 현 정권의 '소통 불가능성의 지속 가능성'을 제지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가다. 앞으로도 현 정권의 임기가 끝날 때 까지 막차를 놓치는 불편함과 다음 날의 피곤함이 반복되겠지만 광장과 거리의 정치는 지속될 것이고 지속되어야한다. 하지만 다시 돌아와서 앞서 반문했던 "그래서?"로 돌아가 보자. '집회 그래서 집회 그래서 집회 그래서…'의 순환 고리가 우리가 갖고 있는 유일한 전략인가?

광장의 한복판에서 목청을 높이다가, 순식간에 덕수궁 앞 인도 앞에서 로보캅 복장을 한 전경들을 멍하게 마주하게 되면서 무기력함을 느낀 것은 비단 필자뿐일까? 일찍이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모든 견고한 것들은 대기 중으로 사라진다"는 시적인 문구를 남긴 바 있다.

이 문장은 혁명을 통하여 지배 계급(견고한 것)을 무너뜨리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한 세기가 지나서 복잡해진 정치·사회 구조 속에 놓여 있는 우리들에게 이 문장은 지배 계급뿐만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을 향해 던져진 물음표이기도 하다. "광장의 열기를 사라지지 않고, 어떻게 견고하게 할 것인가?"

▲ 6월 10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는 쌍용차, 용산 참사, 운하 등 갖가지 사회 의제를 놓고 온갖 목소리가 쏟아졌다. 이런 광장의 열기를 어떻게 공고화할 것인가? ⓒ황진태

'듣보잡' 현상의 교훈?

'듣보잡'이라는 인터넷에서 떠도는 용어가 짐짓 인터넷과 멀어 보이는 교수의 입에서 나올 정도로 일상용어가 되었다. 인터넷 국어사전에 따르면 '듣보잡'은 '듣도 보도 못한 잡놈'을 일컫는다. 이 용어의 확산 원인은 진중권과 변희재 간의 논쟁에서 진중권이 변희재를 '듣보잡'이라고 딱지를 붙이면서 확산되었다. 그간 공개적으로 변희재라는 이름을 언급하는 게 껄끄러워 구경만 하고 있었지만, 이번 '듣보잡' 현상은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현재 수많은 보수단체의 완장을 차고 있는 변희재는 사실 '듣보잡'이라고 하기에는 인터넷 토론 바닥에서는 유명한 논객이었다. 1990년대 후반 논객사관학교로 알려져 있던 <대자보>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 인물과사상사에서 대중문화 관련 서적을 출간했었다. 2002년 대선 기간 동안에는 당시 노무현 후보의 진지였던 인터넷 토론 사이트 <서프라이즈>의 필진으로 활동하면서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촉망받는 논객으로 주목받았었다.

이후 노무현 정권에 대한 의견이 갈리면서 <서프라이즈>를 나와서 <시대소리>를 창간했었다. 필자 또한 2003년부터 <대자보>와 <시대소리>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대자보> 사무실에서 변희재를 가끔 만났지만 깊은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다. 이후 변희재는 안티조선 논객에서 조선일보 논객으로의 변신을 하였다.

변희재의 전향에서 대해서 그간 언급할 기회가 없었지만, 예전부터 그의 글을 읽으면서 생각한 바로는 논객으로서 변희재는 이념적 토대에 근거하기 보다는 각각의 상황에 적합한 맥락들을 빠른 시간 안에 논리적으로 구성하고, 이슈화하는데 재능이 있는 감각적인 글쓰기에 능한 인물이다.

변희재의 이슈화를 위한 감각적 글쓰기가 이념적 토대에서 벗어나서 '변희재' 그 자체를 이슈화하고자 나서면서 문제가 시작되었다. 그는 포털 공격, 조선일보 칼럼니스트, 동아일보 객원논설위원 등등으로 종횡무진 '감각적 활동'에 나서며 변신에 성공했다.

갑자기 광장의 정치를 이야기 할 참에 왜 변희재를 끄집어냈냐며 반감이 생길 독자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감정적인 부분은 잠시 제쳐두고, 이 글에서는 이 두 고리가 서로 연결된 사회적 현상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글쓰기를 시작해서 이슈 제기에 능했던 진보진영의 한 젊은 논객이 하루아침에 보수 그것도 극우매체의 논객이 된 사건을 개인 하나의 문제로 보기보다는 사회적 맥락에서 바라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변희재 본인에게 직접 물어 보아야 할 질문이겠지만 변희재의 '감각적 활동'을 통해 얻은 수많은 완장들은 역으로 그 많은 완장 중에서 어느 것 하나 제대도 된 안정적인 수입원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깨놓고 말해서 진중권과 같은 예외적인 스타 논객을 제외하고는 이 바닥에 있는 글쟁이들은 생계 문제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는 평소 진보진영이 대안이 없다고 쉽게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비판과 함께 진보진영에서 정책을 구상하고, 대안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이 현실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가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을 했는가에 대해서 필자는 시민사회 차원에서 그러한 고민이 매우 부족했었다고 생각한다.

변희재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서 '감각적 활동'을 추구했다고 말할 가능성이 높지만 내 생각에 그가 했던 매체 중에 어느 하나라도 수익 창출을 이끌어 냈다면 그 정도의 초월적 행보는 보이지 않았을 거라고 예측한다. 변희재와 같은 사회의제에 포괄적이면서 의제 포착 능력이 뛰어난 논객들이 활동할 수 있는 안정적인 매체가 있고, 사회의 중요한 이슈별로 전문분야를 전공한 소장학자들에 대한 안정적인 연구 공간이 마련된다면 진보 진영의 정책 역량은 상당히 강화될 것이다. 언제까지 진보매체들도 예외적 천재인 진중권의 '입' 하나만 볼 수는 없지 않은가?

창피하기도 하지만 이는 필자에게도 현실적으로 적용되는 이야기다. 2003년 <대자보>에서 시작해서 지금껏 여러 매체에서 글을 쓰고 있지만, 이러한 활동이 딱히 최소한의 생계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거의 무관하다고 보는 것이 옳다. 현재 필자의 나이 스물여덟. 88만원 세대, 실업자 범주에 잡히지도 않는 일개 대학원생이다.

미국에서 대학원생은 극빈층에 속한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고작 할 줄 아는 것은 글을 읽고, 쓰는 것 밖에 없다. 시민단체에 한 푼이나마 회원으로 가입하여 돈을 매달 낼 능력도 못돼서, 글이나 쓰면서 대운하를 비판하고, 서울시정을 비판하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가 글을 쓸 때 소속으로 밝히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객원연구원이란 직함은 어디까지나 '객원'이고, 연구소로부터 그 어떤 물적 지원을 받는 것은 아니다. 단지 기본적인 연구원이 지향하는 바에 동감하고, 미약하나마 직함으로 연구소를 홍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회비 대신에 글로써 회비를 내는 꼴이다.

그간 필자가 <프레시안>과 다른 매체에서 실명을 언급하면서 운하와 함께 현 정권을 비판한 글들과 논문이 앞으로 학계에서 학자로서의 미래에 얼마나 장애물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노무현이든 이명박 정권이든 그 시대를 안고 가는 사람으로서 소박한 책임감으로 마땅히 펜을 들 뿐이다. 한 줌도 안 되는 20대 논객인 아흐리만 한윤형과 김현진이 그러하며, 정권을 가리지 않고 날카로운 필봉을 겨누고 있는 <프레시안> 기자들도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글을 읽으면서 속 시원하면 그걸로 "땡!"인가?

위기의 희망제작소는 진보진영의 위기를 가리킨다

소장학자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공통적으로 이런 말을 많이 들었다.

"내 후배들이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적은 월급이라도 주면서 마음껏 연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다."

이 말은 결코 낭만적인 빈말이 아니다. 그간 대운하 비판을 하면서 알려진 필자한테도 6월 10일 아침에 한 선배가 국토연구원에서 경인운하 프로젝트에서 GIS(지리 정보 시스템) 관련 1년짜리 위촉연구원을 뽑는다는 것을 알려주는 문자를 보내 왔었다. 운하 비판을 해왔던 나까지도 그 운하 프로젝트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는 게 얼마나 아이러니인가? 누구든 '듣보잡'이 될 수 있는 덫 아래 놓여있다. 절묘하게도 어제 시청 앞 거리에서 녹색연합이 만든 경인운하 반대 현수막을 보면서 요즘 개그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유행어가 떠올랐다.

"이거 왠지 씁쓸하구먼…"

6월 3일 <경향신문>에는 위기의 '희망제작소'라는 제목으로 아래와 같은 기사가 실렸다.

"지역 활성화와 소기업 발전 운동에 앞장선 시민참여 연구소 '희망제작소'가 위기에 처했다. 창립 3년째를 맞은 올해 들어 정부와 기업의 협력 사업이 잇따라 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 2000여 명의 개인 후원으로 단체를 꾸려가고 있지만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 어려운 형편이 됐다. 이 때문에 희망제작소는 지난 4월말 사무실을 종로구 수송동에서 평창동으로 이전했다. 월세 부담금을 절반쯤 줄인 것이다. 또 지난해 말쯤부터 전체 인력의 절반에 달하는 40여 명의 연구원이 희망 퇴직이나 휴직을 하는 방식으로 연구소를 떠났다."

대표적인 민간연구소인 희망제작소의 사정이 녹록치 않은 지경이 되었다. 박원순 변호사라는 시민운동 최고의 브랜드 가치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작 개인 후원이 2000여 명에 불과하다니 나머지 민간연구소 사정은 말할 것도 없겠다. 희망제작소는 설립 초기에 삼성으로부터의 후원을 받느냐 마느냐로 논쟁을 치른바 있다.

그런데 그러한 비판과 더불어 이 연구소가 재벌의 지원을 받지 않더라도 운영이 가능하도록 우리는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가? 의외로 해답은 간단하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은 10명의 회원이 1명의 연구원을 책임진다는 시스템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운영방식을 상기한다면 결국 국가, 재벌 등의 지배 세력들로부터 독립적인 정책과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돈으로 연구소의 물적 토대를 만드는 모순에서 벗어나서 자립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필자가 너무 구질구질하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꺼냈는가? 그러나 이러한 현실을 보지 못하고서 진보진영은 대안이 없다는 비판은 비판이기보다는 비난에 가깝다. 처음에 던졌던 화두를 다시 꺼내보자.

"광장의 열기를 사라지지 않고, 어떻게 견고하게 할 것인가?"

광장의 정치를 우리만의 축제로 끝날 게 아니라 난청증에 걸려 있는 현 정권의 견고함을 대기 중으로 증발시키고자 한다면, 광장의 열기를 사라지지 않고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견고하게 하는 실천도 병행되어야만 한다. 현재로서는 변희재와 같은 사례를 '듣보잡'이라고 희화하하며 예외적인 사례로 단정할 수 있겠지만 지금도 주변에서는 어느 정도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젊은 친구들이 자신의 포부와 무관하게 생계를 이유로 변경하려는 침묵하는 '듣보잡'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아니 운하를 강하게 비판한 필자조차 운하 관련 프로젝트에 위촉으로 들어갈 당의정의 유혹을 받고 있지 않은가!

6월 10일의 집회에서 경찰들로 인하여 광장의 의사소통 공간이 일순간에 사라지면서 느꼈을 허무함과 무기력함을 어깨에 지고서 집으로 돌아간 시민이라면 시민단체나 민간연구소에 회원 가입을 하여 회비를 지원하든 인터넷신문에 자발적 구독료를 냄으로써 그러한 허무함을 이겨냄으로써 먼 길이겠지만 하나의 대안을 찾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촉망받던 한 젊은 논객의 전향은 진보진영에게 희극에 가까운 비극이다. 하지만 광장을 넘어서 일상적 실천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은 희극조차 허락되지 않는 철저한 비극이라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다. '듣보잡' 현상이 한국 사회에 던져주는 교훈이다.

/황진태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객원연구원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프레시안 6월 12일자에 기고한 글입니다.

by 샤방샤방 | 2009/06/12 21:23 | 사회 | 트랙백 | 덧글(0)

<알림> 공간환경학회 2009 춘계학술대회

공간환경학회 2009 춘계학술대회 프로그램

 

일시: 2009년 5월 23일(토). 오후 1~ 6시30

장소: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육정보관(10-1) 308

 

일정

 

참가등록                                                   12:30 ~ 13:00

 

개회                                                         13:00 ~ 13:20

-         사회:            학술위원장 박배균 교수 (서울대)

-         인사말:          학회장 박경 교수 (목원대)

 

1분과: 기후변화와 공간환경                            13:20 ~ 14:50

1)     기후변화 거버넌스의 사회구성적 접근: 사례분석을 중심으로

-         발표: 이상헌 (한신대 교수)

2)     기후변화협약에 대한 정치생태학적 접근-자연의 생산과 탈취에 의한 축적을 중심으로

-         발표: 황성원 (서울대 석사과정)

3)     기후변화와 도시재생

-         발표: 김용창 (서울대 교수)

 

휴식 (Tea Break)                                          14:50 ~ 15:00

 

2분과: 60, 70년대 개발연대기의 국가공간           15:00 ~ 16:00

1)     개발연대 시기의 대도시 통치성 연구: 대규모 아파트 단지 개발을 중심으로

-         발표: 임동근 (파리7대학 박사과정)

2)     1960년대 광주의 영역동맹의 스케일전략: 호남지역주의의 형성과정

-         발표: 김동완 (경원대 강사)

휴식 (Tea Break)                                          16:00 ~ 16:10

 

 

3분과: 일반 논문 발표                                  16:10 ~ 18:10

1)     Housing Right from the Perspective of Human Rights: The Shift of Human Rights Framework

-         발표: 고은태 (중부대 교수)

2)     생협 유기농 생산자 조직의 생산-소비관계 변화: 홍성 풀무생협 사례 연구

-         발표: 허남혁 (대구대 박사과정)

3)     지역경제발전을 위한 기업유지정책의 효과에 관한 연구

-         발표: 정규진 (성균관대 석사)

4)     발전국가 측면에서의 동아시아 세계도시 연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 프로젝트

-         발표: 황진태 (서울대 석사과정)

 

페회                                                         18:10 ~ 18:20

식사 및 뒷풀이                                           18:40 ~

 


by 샤방샤방 | 2009/05/18 09:01 | 공간+지리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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