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새로운 사회를 여는 희망의 조건(2008, 시대의창)

2년 전 진보적 싱크탱크를 자임하고 출범한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은 첫 단행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상상력>(시대의창펴냄)을 통해서 신자유주의, 분단체제 하의 한국사회에 새로운 사회 밑그림을 제시한 바 있다. 이번에 출간한 <새로운 사회를 여는 희망의 조건>(시대의창 펴냄)에서는 그 밑그림에 색을 칠할 주체가 누구인지, 또 어떤 방법으로 색을 칠할지를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문제의식은 한국의 경제구조의 변환에 있다. 속칭 '87년 체제'로 불리는 형식적 민주화의 위기가 아니라 신자유주의가 이식된 '97년 체제'의 위기가 문제라는 것이다. "미국 중심의 거대 금융자본의 주도 아래, 소수화되고 비대해진 재벌기업군, 민영화된 공기업, 금융기업 그룹이 최신의 주주자본주의를 이끌고 있는 것이 한국 경제의 새로운 모습"이다.

이 책은 혹자의 상상된 50:50의 진보 대 보수의 싸움이 아니라 20:80 혹은 10:90의 양극화 구도에서 10을 위해 희생하는 나머지 90의 주체를 분석하고자 한다. 이러한 반신자유주의 구도 아래에서는 민중의 결집이 필요하다. 이 책은 민중 안에 노동자, 농민, 대학생, 자영업인들을 분석함으로써, 이들이 변혁 주체로서 나아갈 수 있는 전략을 제시하고자 했다.

이 책은 우선 기존의 제조업 노동자 문제, 비정규직에 대한 분석에서 한층 더 나아가 첨단 산업 노동자와 금융 산업 노동자를 끌어안는 적극적인 주체화를 시도한다. 기존의 선입견은 첨단 산업 노동자나 금융 산업 노동자를 고소득, 쾌적한 환경에서 작업하는 '화이트컬러'로만 생각하고, '노동자'로 보지 않았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이들을 노동자 범주 밖에 둬서는 곤란하다고 보고 있다. 이들은 심한 노동 강도와 낮은 노조 조직률을 특징으로 한다.

이 책에 실린 통계를 보면, 첨단 산업 노동자의 주간 평균 노동시간은 약 58시간이며 60시간 노동하는 비율도 43%나 된다. 심지어 80시간 이상 초장시간 노동하는 비율도 7.6%에 달했다. IT강국의 첨단 노동자란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노동시간이다. 이는 임금 노동자 평균 50시간을 넘어섬은 물론, 자영업인 노동시간 59시간과 맞먹는다.

금융 산업 노동자 역시 마찬가지 사정이다. 최근 은행의 비정규직 증가, 남아있는 정규직의 노동 강도 증가 등의 문제가 심해지고 있다. 이 책은 이런 첨단 산업, 금융 산업 노동자를 새로운 노동운동의 주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때, 한국 노동운동의 질적 변화가 가능하리라고 주장한다.

이 책은 또 지속 가능한 국민농업으로의 전환을 주장한다. 국민농업이란 "국민 모두가 이해당사자가 되어 함께 책임지는 농업"을 일컫는다. 식품 안전, 곡물 가격 폭등에 대한 국민의 우려에서 알 수 있듯이 농업은 결코 국민과 무관한 산업이 아니다. 이 책은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두고 농업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환경 친화적 농업으로의 전환, 식량의 안정적 공급, 전 국민적인 먹을거리 공동체 형성, 남북의 상호보완적인 농업 공동체 형성이 이 책이 내놓은 한국 농업의 미래이다. 이런 미래를 가능하게 하려면 농민운동이 다른 주체와의 전방위적인 네트워크를 맺고, 기존의 신자유주의적 농업 방식에 대응하는 게 필요하다.

이 책은 대학생의 경우에도 기존의 시각과 다른 결론을 내린다. 이들은 대학생이 보수화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엄밀히 분석한 후,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전공 선택과 등록금, 취업에 대한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하는 대학생은 더 이상 '민중을 위해 복무'해야 하는 특권적 주력군이 아니"라고 결론 내린다.

지금 대학생이 해야 할 일은 바로 자기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 책은 프랑스의 최초고용계약법에 대한 프랑스 대학생들의 반대투쟁에서 노동자들과의 연대에서 볼 수 있듯이 오늘날의 대학생은 교육경영에서의 신자유주의의 이식에 대한 등록금 투쟁 등의 시작으로 다른 조직과의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자영업자를 새로운 운동 주체로 설정한 부분도 눈에 띈다. 그간 자영업은 생산수단을 갖고 있지만, 직접 노동을 하기 때문에 애매한 중산층으로 싸잡아 분류되었다. 그러나 새사연의 눈에는 600만 명의 자영업자들을 누락시키고서 새로운 사회의 주체를 세운다는 것은 어불성설에 가깝다.

이들 연구를 보면, 자영업에서 5인 미만의 고용업체가 전체의 88%를 차지할 정도로 영세하며, 월평균 소득이 중산층으로 간주하는 214만 원에도 못 미치는 자영업자가 490만 명에 이른다. '유리지갑'이라며 자영업자를 비판하기에는 "자영업자의 지갑은 투명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결코 두껍다고 할 수 없다."

서비스업의 증대는 선진국 사회로의 진입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생산자, 사회 서비스의 저조함과 대조되는 유통, 개인 서비스의 증대는 결코 선진국 사회와는 거리가 멀다. 새사연은 이러한 비정상적인 자영업의 증대가 신자유주의에 의한 노동의 유연화 전략에 떠밀려 나온 이들의 '비자발적인 선택'임을 지적하면서 자영업 특유의 지역 기반을 살려서 지역 주민의 연대를 끌어내어 다른 주체들과의 도시연대 구성을 주창한다.

"상위 10%만을 위한 시장국가에서 하위 90%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부제처럼 이 책을 읽으면서 막연했던 신자유주의로부터의 수동적인 자세에서 조금 더 능동적인 사고를 끌어내어 다른 곳에 있는 노동자를 농민을 대학생을 그리고 자영업자들을 생각해보았다.

<프레시안> 3월 16일에 실림.

by 샤방샤방 | 2008/03/16 13:28 | 서평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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