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 논란을 넘어 먹거리 공급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 물음으로

 



바늘 위에 놓인 광우병 비판전선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추진했었던 청계천 토목사업은 이후 자신의 대권경쟁에서 비교우위를 확보해준 확실한 공적이 되었다. 그러나 취임 후 세 달을 못 채워 역설적이게도 현재 청계천광장은 이명박 정권의 어설픈 쇠고기 협상을 질타하는 시민들이 모여들어 ‘거리의 정치’의 장(場)이 되었다.


여당과 이명박 정부가 촛불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을 친북, 반미세력으로 아무리 덧씌우려는 것과는 달리 시위현장에서 만난 청소년들은 마치 놀이를 하듯 교복을 입고서 흥겹게 시위에 참석했고, 일반시민들은 먹는 것에 대한 불신에서 불거진 아주 상식적인 분노때문에 밖으로 나왔다. 시민단체들은 일반인보다 광우병에 대한 좀 더 체계적인 문제의식을 지닐 수 있을지 언정 참가한 누구나가 미국에 검역주권을 고스란히 바친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분노에는 차이가 없었다. 이렇게 제도정치의 한계에서 비롯된 시민들의 직접행동은 괄목할 사건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전선의 형성과정과 더불어 직접행동을 이끌어낸 운동에너지를 어디까지 뻗어나가야 하는 가에 대한 물음 또한 동시에 고민해야할 시점이다. 그러니까 현재 졸속협상에 대한 저항시위를 통해서 정부를 압박하여 결국 미국으로부터 재협상을 받아내고, 생후 ‘30개월’ 이상 된 소에서 ‘20개월’로 낮추는 성과를 얻어내면 현재의 운동은 막을 내려야 하는 걸까?


현 비판전선은 중고등학생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동기를 갖고 있는 시민단체와 시민들로 뭉뚱그려져 있다. 하지만 전선 내부에서도 여러 행위자들이 활동하고 있고 그 중에서 두드러지는 움직임이 있다. 바로 한미FTA가 초래한 미국 소라는 국경 ‘밖’과 미친 소의 유입을 저지하고자 하는 국경 ‘안’이라는 민족주의 혹은 민족농업 프레임이다. 여당, 정부, 극우언론에서 비판전선에 반미색깔을 씌우는 것은 어불성설이라 하더라도, 국내축산농가의 참여와 민족주의적 성향(민족농업 프레임)이 없다고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여기서 지난한 민족주의 논쟁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내가 우려하는 점은 바로 민족주의 코드가 현재의 저항운동 결집에서 결정적인 국면에 와해를 초래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좀 더 도발적으로 말하면 몰상식한 보도프레임을 드러내는 극우보수언론에 맞서 ‘상식적인 언론’은 미국 소 문제뿐만 아니라 국내 소 또한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한가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가로 연결되어야 한다.


민족주의 코드가 결합된 저항전선은 한시적으로 미국 소에 대한 비판에서는 전략적인 응집효과가 있겠지만 이후의 비판전선은 국내 축산농가과의 관계를 어떻게 재설정해야 하는 가에 있어서 바늘 위에 서있는 것처럼 불안한 형국이다. 따라서 필자는 비판전선이 최소한 하나의 전제는 합의해야한다고 보는데 그것은 민족주의적 코드보다는 중고등학생들이 길거리로 나서게 만든 먹거리 공급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안전(food security)에 무게를 실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 이러한 합의가 중요한 가에 대해서 근자의 몇 가지 언론보도행태를 통해서 논의해보자.



브릭스의 ‘과학적 논의’, 보수언론의 정치적 활용과 진보언론의 침묵? 


소장학자들이 활동하고 있는 브릭스(BRICS:생물학연구정보센터)는 지난 황우석 사태에서 논문조작을 결정적으로 밝혀낸 중요한 역할을 한 바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광우병이 논란이 되자 브릭스 홈페이지에는 최근 ‘광우병에 대한 논란, 과학적으로 논의해보자!’는 토론게시판이 개설됐다. 브릭스 게시판에는 ‘과학적 논의’를 바탕으로 미국 소뿐만 아니라 국내 소도 문제가 없는가에 대한 주장이 제기되었는데 아래 표는 한국과 미국의 광우병 위험도 비교분석한 것으로 게시판에 실린 자료 중에 일부다.


 


그러나 ‘상식적인 언론’으로 손꼽히는 <경향신문>에서 조차도 미국 소의 광우병 논란에는 총력을 집중하고 있지만 국내 소에 대한 지적은 없다. <경향신문>을 비롯한 상식적인 언론은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알고 있으면서도 현재 저항전선의 분열을 초래할 까봐 입을 닫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은 비단 필자만의 ‘오버’일까? 재차 강조하지만 비판전선의 핵심은 미국발 광우병 위험을 비롯한 먹거리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 점검이다. 브릭스에 실린 자료와 같은 문제의 칼날이 국내축산업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것은 먹거리에 대한 기본적인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시위의 동기와 충돌한다.


황우석 사태에서는 정부와 보수언론도 문제였었지만, 진보언론 또한 애국주의, 민족주의 프레임에 편승하여 자신의 입장을 잡지 못하고 헤맸던 것이 불과 3년도 채 안됐다. 당시 <프레시안>, MBC가 애국주의의 마녀사냥을 당한 것을 생각하면 비판전선 내부에서 우리 안에 대한 성찰을 하자는 주장을 펴는 것을 망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언젠가는 국내의 문제도 이야기할 시점이 올 것이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지만 이와 관련한 의제선점을 빼앗기고 있는 상황에서 뒤늦은 시작일 지도 모른다. 


이미 일부 인터넷보수언론에서는 진보매체에서 국내 소에 대한 광우병 가능성 논의에 침묵하는 것에 대하여 비판을 하면서 의제를 선점하기 시작했다. 이들 매체는 정권의 미국 소 수입의 합리화를 위해서 이를 선별적으로 선택한 것이지만 상식적 언론이 과학적 논의로서 국내 소에 대한 시스템적인 접근을 도외시한 것을 가릴 수는 없는 사실이다. 


최근에는 인터넷보수언론 뿐만 아니라 <조선일보>, <동아일보>와 함께 미국 소의 도입을 지지하는 메이저 언론인 <중앙일보>에서도 브릭스의 광우병 토론게시판에 대한 보도기사를 실었다. <중앙일보>의 기사 일부를 보자.


회원 ‘idrl’은 “광우병 공포가 언론과 시민단체에 의해 과장됐다”며 “소가 미국산이냐 한우냐가 발병 기준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푸른돼’라는 회원은 ‘현직 의사의 소고(小考)’라는 글에서 “무지와 공포가 만연한 곳에는 선동이 끼어들 자리가 많다”며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고 생각하는 것은 기우”라고 주장했다. 프리온이 화씨 600도(섭씨 315도)에도 견딘다는 인터넷 소문에 대해 ‘into’는 영국의 한 의학 저널을 인용해 “비정상 프리온은 섭씨 120도의 고열에서 견디고, 134~137에서도 3분 이상 버틴다”고 말했다.


미국 내 쇠고기 소비량도 변화가 없다는 글도 올랐다. ‘오마담’이라는 회원은 “미국 내 음식 문화의 변화는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미 농무부에 따르면 미국 내 쇠고기 총소비량은 2002년 279억 파운드에서 지난해 281억 파운드로 약간 늘었다. 미국 내 총 쇠고기 생산량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2년 9%에서 광우병 소가 발견된 2003년 1.9%로 급락했으나 지난해에는 5.5%로 늘어났다.<중앙일보 2008.5.6.>


<중앙일보>의 기사는 브릭스의 ‘과학적’ 논의를 미국의 광우병 비판에 대한 대응논리로 활용한 ‘정치적’인 취사선택이다.(이러한 정치성을 지우려고, 기사에서는 쇠고기 수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네티즌 발언도 인용하였다.) 이렇게 보수언론이 브릭스의 과학적 논의를 정치적 취사선택을 하고 있을 때 상식적 언론은 이에 대해서 적극적인 의제선점을 하지 못한 이유가 비판전선의 와해를 우려한 거라면 종국적으로 현재의 졸속협상에 대한 견고한 비판도 결국 운동에너지를 상실할 것이다.    



저항전선의 민족주의 지양, 먹거리 시스템의 근본적 개선으로


여기서 브릭스가 보수언론에 의해서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고 있다는 점이 논의의 핵심은 아니다. 지난 황우석 사태에서 진보언론이 적절한 대응을 못하여 진보진영 내부에서 혼란을 야기했던 점, 그리고 당시 국민들에게 사태에 대한 진단과 전망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오히려 애국주의에 휘둘린 매체들도 있었고, <프레시안>, MBC 등 소수매체만이 문 닫을 각오로 마녀사냥의 여론을 감당하게 했던 점을 상기하면 최소한 이들 매체에 대한 부채의식에서라도 현 비판전선은 민족주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서 광우병 논란에 대한 재협상을 위한 수세적 대응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먹거리 공급 시스템에 대한 청사진도 동시에 제시해야 한다. 그렇다면 청사진은 뭔가?


청사진이라는 것이 새롭고, 거창한 것을 급조하자는 게 아니다. 먹거리 문제는 이미 국내에서도 오래 전에 소개되었고, 생활협동조합을 통해서 각지에서 로컬푸드 등이 시도되고 있다. 그 밖에 여러 관련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을 통해서 대안을 제시하고자 했고, 논의가 축적되었다. 또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학교급식 개선과 관련하여 기성정당들보다 앞선 의제선점력을 보여준 선례가 있다. 하지만 먹거리 공급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전환을 위한 세부적 전략을 갖고 있는 이들 시민단체나 진보성향의 정당들도 현 정부에 대한 효과적인 대립각을 세울 수 있는 수세적 대응에 치우친 나머지 입을 다물고, 그 이상의 논의로 진전하지 못하고 있다.


근본적인 우리 먹거리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면 현 비판전선은 국내축산시스템에 광우병이든지 위험요소가 있다면 미국 소만큼이나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먹거리 공급 시스템의 안전(food security)을 보장하고, 국내축산농가의 미래도 밝히는 것이다. 비판전선 일각에서는 현 시점에서 국내 소에 대한 문제제기가 미국에게 유리할 것이라면서 현재는 국내 시스템에 비판은 유보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일본의 전수검사 사례를 본다면 오히려 비판전선은 국내 시스템의 변화를 통해서 미국을 상대로 협상에서 탄탄한 대응논리로 구축할 수 있다.


현재의 운동에너지가 어떻게 말소될지 모르는 불분명한 시국에서 “다음에”라는 말보다는 운동에너지가 있는 바로 지금 병행해야 하는 고민에 착수되어야 한다. 이는 현 비판전선의 논점을 흐리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먹거리 시스템에 대한 선명한 전략이다.


요컨대 현재의 정황은 언론에 실릴 전략과 대안으로서의 청사진이 없어서 공론화가 못되는 게 아니라 비판전선의 외연적 확산에 치중한 나머지 내포적 합의(민족농업프레임이냐 먹거리 공급 시스템이냐)를 주저했다고 보는 게 보다 적절하다. 


그간 국내농민단체들의 한미FTA를 비롯한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응전략에서 여전히 민족주의적, 국가주의 측면에서 접근하여, 경직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지적은 오랫동안 제기 되어왔었다. 이러한 민족농업 프레임으로는 근자에 제기된 광우병 논란과도 연결되는 먹거리 공급의 안전보장(food security)과 먹거리 주권(food sovereignty) 등의 의제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한다(허남혁, “농업 농촌의 신자유주의화와 농민운동의 대응”, 한국공간환경학회 2008년 춘계학술대회 발표논문中).    


이러한 지적 때문인지 국내축산농가를 대변하는 신문사설에서도 “우리 소비자들도 이제 미국 쇠고기에 대해 알만큼 알고 있는 만큼 한우를 비롯한 우리 축산물에 대한 품질·안전·가격 경쟁력을 좀 더 높이고 시장에서 마케팅을 강화한다면 우리 축산업의 살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님을 덧붙인다”(<축산신문> 2008.04.21)고 강도는 약하지만 자성을 촉구한 바 있다. 미국 소에 대한 비판과 함께 국내축산농가는 국내검역체계와 사료공급에서 시민들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할 수 있는 가에 대해서 스스로 자문을 던져야 할 때다. 앞서 브릭스에서 인용한 자료자체의 사실 유무에 대해서도 아무런 확증이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민족주의 전선만으로는 결코 궁극적인 먹거리 문제 해결에 종심이 될 수 없다. 



광우병 논란, 황우석 학습효과로 성찰의 기회 삼아야  


한 매체에서 브릭스의 문제제기에 대한 취재를 준비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저항적 민족주의에서 배타적 민족주의로 돌변하는 것이 순식간이라는 것은 황우석 사태, 디워 논란 등에서 유감없이 드러난바 있다. 따라서 불과 몇 년 전의 광기를 생각하면 이번에 보도할 매체가 제2의 <프레시안>, 제2의 MBC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최소한 상식적인 언론을 자임한다면 ‘황우석 학습효과’때문에라도 이번부터는 민족주의적 코드, 국가 스케일에 한정한 접근은 지양해야 하며, 미국/한국 구도의 민족주의적 코드(민족농업 프레임)가 아닌 과학적 논의를 통하여 국내축산업도 문제가 있다면 이번 기회를 통해서 성찰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모처럼 중고등학생까지 다양한 세대가 참가하여 모아진 거대한 시민사회 운동에너지를 미국 소의 생후 30개월에서 20개월로 줄이는 수준에서 소모시키는 것은 호기를 놓치는 것이다. 재차 말하지만 논란의 쟁점은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바람에서 시작됐음을 상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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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방샤방 | 2008/05/16 01:29 | 사회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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