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오세훈

이명박·오세훈·정명훈, 그들이 사는 세상

이명박·오세훈·정명훈, 그들이 사는 세상
청계천, 인천 그리고 용산



1970년대 서울시 중구 소공동에 롯데호텔이 세워진 것은 롯데 회장 신격호가 김종필을 비롯한 당대 정치 실세의 도움을 받은 것이 결정적이었다. 그로부터 30년이 흐른 2009년에는 제2롯데월드를 추진을 위해서 국가 안보마저 내팽개친 이명박 정부의 도움을 받았다. 예나 지금이나 서울은 자본과 권력의 공간으로 팽창 중이며 그 강도는 더 강해지고 있다.

최근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용산이라는 단어의 사용이 줄어든 것을 보면 용산 참사의 기억도 국민들의 뇌리에서 스멀스멀 사라지는 듯하다. 동시에 매우 자연스럽게 집값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용산 참사와 집 걱정은 서로 떨어져 있는 문제일까? 용산 참사는 자신과 무관하며, 누구나 먼저 돈을 모아서 집을 사면 괜찮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홍세화가 그토록 많은 강연을 다니면서 지겹도록 말하는 존재와 의식의 불일치를 일치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걸까? 혹 자본과 권력이 대세인 만큼 그 속에 파묻혀 사는 게 현명한 방법일까? 그러나 결국 극히 일부만이 혜택을 받을 것이고, 대다수는 제2, 3의 용산 참사를 겪기 전에는 용산과 다름없는 공간에서 불안하게 살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얼마 전 한 드라마의 제목이 "그들이 사는 세상(그사세)"이었다. 나는 근자에 청계천, 용산, 인천경제특구를 답사하면서 이명박, 오세훈, 정명훈 그들이 사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때로는 글보다는 사진이 현실을 더 잘 드러낸다.

용산 참사 이후의 모습, 청계천

▲ 청계천을 복원하는데 기여한 사람들의 명단에서 다른 이름들은 멀쩡한데 이명박 시장의 이름만 훼손되어 있다. '법치'가 강조되는 이명박 시대에 잡혀가면 어쩌려고 이런 범죄 행위를 저질렀다. ⓒ황진태
이명박이 대통령 자리를 얻을 수 있는데 기여했던 일등공신은 바로 청계천 복원 사업이었다. 서울을 경쟁력 있는 세계 도시로 만들기 위한 명분은 복원 과정에서 발생했었던 문화재의 왜곡된 복원과 서울시와 상인들 간의 갈등 등은 깔끔하게 지워졌으며, 현재 서울시민들과 외국 관광객들에게는 서울의 대표적인 관광명소가 되었다.

청계천 복원 사업을 보면 용산의 미래가 보인다! 청계천에 딱 붙어서 세워진 '롯데캐슬'은 신격호 회장이 롯데호텔과 제2롯데월드를 뚝심 있게 추진했듯이 그 위세를 자랑하고 있다. 그 위세가 얼마나 위풍당당하면, 청계천을 따라서 세워진 다른 초고층 주상복합 건물은 초라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크기에 내 카메라로는 일부분 밖에는 촬영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 사진으로 찍을 수 없을 정도로 큰 롯데캐슬. ⓒ황진태

▲ 우주선을 닮은 초고층 주상복합 건물이 건설 중이다. ⓒ프레시안
그렇다고 다른 초고층 주상복합 건물들이 괜찮다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건설 중인 건물은 마치 우주선과 같은 모양인데, 완공이 되면 그대로 우주로 날아갔으면 하는 상상을 해본다. 이들 건물들이 정말 우주 저 멀리로 날아간다면 최소한 청계천을 걸을 때 시민들이 병풍 같은 초고층 건물 때문에 햇볕을 즐기지 못하는 짜증은 겪지 않아도 될 것이며, 기존 거주민들도 계속 거주할 수 있도록 지금과 같은 지가 상승으로 고통 받지도 않을 것이다.

도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외국인 관광객까지 받아들이면서 끝내 받아들이지 못한 거주민은 어디로 갔을까? 청계천 복원 사업은 평범한 시민의 미래를 보여준다. 다음 사진을 보면 청계천 판잣집을 재현했다. 사람은 떠나고, 가난했던 시절은 그저 하나의 추억, 테마로 가공되면서, 장소 마케팅으로 활용되고 있다.

몇 십 년이 흘러서 롯데캐슬 건너편에 마주하고 있는 낙후된 아파트도 장소마케팅의 일환으로 일부는 복원될지 모른다. 물론 그곳에 본래 거주민은 살지 않을 것이다. 이제 자본과 권력이 스민 공간에 어울리는 배경 음악만 깔리면 되겠다. 청계천을 사이로 롯데 캐슬과 마주한 낙후된 아파트. 이 자리도 곧 재개발이 이루어질 것이다.

▲ 청계천을 사이로 롯데캐슬과 마주한 낙후된 아파트(왼쪽). 청계천 판잣집(오른쪽). ⓒ황진태

청계천과 용산에 울려 퍼질 정명훈의 음악

예전에 우석훈이 "극우파 예술전형"으로 정명훈을 지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고, 당시 서울시장 이명박에 의해 서울시향에 정명훈이 영입되면서 통하지 않을 거 같았던 이명박이나 오세훈과 오히려 너무 잘 지내는 게 기묘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최근 정명훈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레디앙>에 실린 목수정의 정명훈 비판 글을 보고서다. 그 기고문에 따르면 정명훈은 국립오페라합창단의 해체에 대한 서명과 연대를 부탁한 것을 거부하고, 더불어 막말까지 했다고 한다. 결국 정명훈과 합동 공연을 했었던 국립오페라합창단은 사라지게 되었는데, 그렇다면 정명훈이 바라는 예술관은 어떤 것일까?

정명훈은 1994년 자신이 몸담고 있었던 바스티유오페라에서 부당 해고를 당하고 노조의 도움으로 복권되었다. 그럼에도 그가 예술가의 노조 결성과 연대의 중요성을 학습하지 못한 이유는 그가 자신을 노동자로 생각하기 보다는 자본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비록 제1세계에서는 노동자에 불과했지만…. 그가 서울시향에 들어오자 노조 결성을 못하게 된 것도 이를 방증한다.

마침 필자가 전공이 지리학인지라 인천경제자유구역(IFEZ)을 10년 가까이 답사하면서 귀 기울이지 않았던 브리핑 내용이 이번에 또렷이 들렸다. 인천경제자유구역 홍보 직원에 따르면 인천경제자유구역 송도신도시에 짓고 있는 IFEZ 예술센터는 바로 정명훈이 투자했다고 선전하고 있었다.

▲ 노동권이 말소될 비즈니스 유토피아를 구축하고 있는 인천경제자유구역 현장. ⓒ황진태

인천경제자유구역은 전 국토의 전면적인 시장 개방에 직면해, 중앙정부가 특별히 선택한 신자유주의 공간이다. 이 신자유주의 공간을 구획 짓는 경제자유구역법은 무노조를 지향하는 정명훈에게 적합하다. 가령, 경제자유구역법 제19조는 "노동자는 노동쟁의에 관한 관계 법률상의 절차를 엄격히 준수하여 산업평화를 유지하도록"해야 한다면서 노동권이 행사되면 공권력 투입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서 노동권을 무력하게 만들 수 있다. 고로 정명훈에게는 '장사'를 할 인력을 끌어들이는 데는 제격인 공간이다.

"한국은 합창단 해체해도 다음 날이면 노래 잘하는 사람 500명 금방 모입니다." "내가 서울시향에 있는데 거기서 1년에 5~6명씩 해고당해요. 여기만 해고당하는 사람들 있는 거 아니에요. 지금 온 나라가 다 그러고 있는데, 합창단 하나 없어졌다고… 이 사람들이 여기까지 와서… 그리고, 도대체 나더러 뭘 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에 서명하라고?" (<레디앙>, 2009년 3월 23일 기고문 중)

정명훈은 정부에서 선전되듯이 '비즈니스 유토피아' 같은 말로 노동권이 제한받는 경제자유구역에서도 노래 잘하는 사람 500명은 금방 모일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경제적 상황이 어려워서 데카CD도 어렵게 중고로 모아서 들었던 필자를 포함한 클래식 리스너들, 혹은 노조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앞으로 보편타당하게 생각했던 정명훈의 음악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걸러 들을 줄 아는 청감(聽感)이 필요하지 않을까?

바그너의 음악이 나치 선전에 좋은 선전 도구가 이용된 것은 바그너에게는 억울하지만 '음악의 정치'가 가능함을 보여줬다. 한국 사회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나치 다큐멘터리를 만들며 능동적으로 영화계의 괴벨스가 되었던 독일의 여성 감독 레니 슈펜스탈처럼 의도적인 예술의 정치를 하고 있는 '음악의 정치가' 정명훈에 대한 비평이 필요하겠다.

▲ 인천경제자유구역 아트센터 조감도. ⓒ황진태

▲ 송도갯벌타워에 전시되어 있는 아트센터 모형. ⓒ황진태

세상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

용산 참사 이후에 어떠한 공간이 만들어질까, 스스로를 향한 질문은 답사를 하면서 청계천이 용산의 미래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청계천 복원 사업으로 떠난 거주민들, 용산 참사와 재개발로 떠나게 될 거주민들은 어디로 갔을까? 용산 참사가 발생한 건물에는 사진과 같은 글귀가 걸려 있다. 바로 오세훈에게 돌려주고 싶은 말이다.

"세상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입니다." 그런데 어째 오 시장은 이 말이 익숙하게 들렸을 거 같다. 2007년 한 기자회견에서 오세훈은 "주택은 사는 것 아닌 사는 곳"이라고 말한 바 있다.

▲ "세상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입니다." ⓒ황진태

최근에 종영된 '그들이 사는 세상'은 현빈, 송혜교 등의 기라성 같은 스타들이 주연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마니아에게만 사랑을 받고서 아쉽게 끝났다. 이명박, 오세훈 주연에 음악은는 정명훈까지 현재 절찬리에 서울 공간에서 발생하고 있는 그들이 사는 세상도 무노조와 자본 숭배자 등의 일부 소수 마니아들만에게 사랑을 받다가 조기 종영되길 간곡히 바란다.

/황진태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객원연구원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프레시안 2009년 4월 10일자에 기고한 글입니다.

by 샤방샤방 | 2009/04/10 10:17 | 공간+지리 | 트랙백(1) | 덧글(0)

경쟁의 세계화가 빚어낸 용산 참사

용산 참사를 겪으면서 재개발의 제도상 문제점에 대한 논의는 많았었다. 이번 글에서는 이 참사가 경쟁의 세계화가 빚어낸 필연적인 사건이라는 측면에서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1997년 경제 위기 이후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국내의 제반 영역에 침투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사람들은 세계화를 마치 외부에서 쓰나미처럼 밀려와서, 수동적으로 받아들여만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현재의 국가는 핵심적인 '조정자'로서 세계화의 전면적 확산보다는 예컨대 경제자유구역과 같은 공간에 세계화를 우선 추진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런 방식은 신자유주의 전면화에 브레이크를 걸었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대안'일 수 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경제자유구역에 선정되지 못한 지역에서 자기 지역에 경제자유구역을 유치하려는 지역 개발연대가 활동을 하도록 하는 세계화의 '촉매' 역할을 하기도 한다. 후자의 경우는 서울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청계천 복원 사업은 '동북아의 중심도시, 국제적인 상업도시, 금융 거점도시'를 내걸고 추진된 세계 도시화의 일환이었다. 이 사업을 통해서 청계천 노점 상인은 닭장 같은 동대문운동장으로 집단 이주를 해야 했다. 청계천 복원 사업의 성공(?)을 발판삼아 대통령이 된 이명박을 좇아서, 오세훈 서울시장도 서울시정의 핵심으로 세계화를 내세웠다.

오세훈 시장은 우선 근대 문화 유산 동대문운동장을 부순 자리에 '세계 5대 패션도시를 만든다'며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앤 파크'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으로 이 전 시장에 의해서 쫓겨났던 상인은 또 다시 도심에서 더욱 먼 곳으로 집단 이주를 하였다. 이런 비자발적 집단 이주는 주로 전쟁에 의해서나 발생한다. 서울 시민에게 오 시장은 내전을 일으킨 '전쟁 사령관'이고, 서울은 전쟁터일 뿐이다.

▲ 용산에 오세훈 서울시장이 추진하는 국제 금융 업무 지구 청사진. ⓒ프레시안
용산은 오세훈 시장의 또 다른 작전 지역이다. 국제 금융 업무 지구로 선택된 용산은, 지난해 코레일, 삼성물산 등이 참여한 용산역세권개발주식회사의 창립을 기점으로 '한강 르네상스 사업' 지역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곳이 되었다. 그들은 북으로는 남산, 남으로는 한강을 걸친 초고층 건물이 즐비한 장밋빛 세계 도시의 청사진을 내세운다.

그러나 지금까지 용산에서 살고 있는 시민과 그들의 터전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테러'로 지칭되는 용산 참사와 같은 예외적 사건이 발생할 때만 그들은 '2등 시민'으로 잠깐 언급될 뿐이다.

그간 안전상, 안보상의 이유로 반대했었던 제2롯데월드도 세계적 초고층 건물을 세워 경제에 기여한다며 이명박 정부와 오세훈 시장의 합작으로 기어이 관철되었다. '좌파 신자유주의' 노무현 정부에서도 반대했었던 제2롯데월드가 기적처럼 추진될 수 있었던 것은 서울시 공간에 대한 시민의 선택권이 줄어들고, 자본의 선택권이 한층 강화됐음을 반증한다.

▲ 제2롯데월드 조감도. ⓒ프레시안
자본주의 도시에서 수요와 공급에 따른 '지대의 법칙'에 따라 자본의 선택권이 우선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적어도 자본주의 도시의 그 자본주의가 작동하려면 여전히 필요충분조건으로서 노동자가 있어야 한다. 이들의 주변화가 결코 장기적으로 자본주의 도시의 생존에 이롭지 않다는 점은 신자유주의자들도 인정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작금의 세계 도시 주창자들은 누구보다 더 높은 초고층 건물을 세우면 저절로 세계 도시가 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이는 마치 어렸을 적 친구들 간에 누구 성기가 더 큰가 쟀던 것에 다름 아닌 치기어린 발상이다. 문제는 이러한 남근주의적 발상이 비단 애들 싸움으로 그치지 않고, 시민을 내쫓는 '내전'으로 확산된 엄연한 현실이라는 점이다.

재개발을 비롯한 도시 계획에서 도시 간 경쟁이 아닌 연대의 패러다임 정립이 필요하다. 세계 도시를 원한다면 이명박 정부와 서울시는 서울을 자본의 전쟁터가 아닌 기존 시민과 더불어 살아갈 공간으로 만드는 고민부터 해야 할 것이다. 자기 품안에 있는 국민들도 안아주지 못하면서 세계를 안으려하는 그 오만함에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황진태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객원연구원



*2009년 2월 4일자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입니다.

by 샤방샤방 | 2009/02/04 11:16 | 공간+지리 | 트랙백 | 덧글(0)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