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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 먹은 양윤재를 다시 장관급으로

뇌물 먹은 양윤재를 다시 장관급으로

미필적 악의적 서평을 쓰게 만든 원인은?

용산참사 이후 국익을 재물로 바친 제2롯데월드 건설허가, 용산개발이 다시 꿈틀거리는 등, 서울은 자본이 원하는 공간으로 편성되어 가고 있다. 그렇다면 그 공간에서 살고 있는 시민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과연 현재 진행 중인 서울의 막돼먹은 돈먹고 돈먹기식 공간 전략을 제지할 수는 없는 걸까?

최근에 출간된 건축역사가 스피로 코스토프의 <역사로 본 도시의 모습>(2009, 공간사)을 읽으면서 알게 된 샌프란시스코 사례는 필자의 의도가 한갓 낭만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 확인시켜준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수단 좋은 정치가들과 개발업자들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행동주의자들이 벌인 정치적 선전운동은 1985년 가을, 도시중심지에 대한 새로운 계획을 통과시켰다. 그 계획은 구시대의 고층 건물들을 포함하여 많은 랜드마크를 허물지 못하게 했다. 과밀한 금융지구부터 새로 지어지는 사무용 고층 건물을 금지했고, 1년에 지을 수 있는 실질적인 건물의 수를 제한하는 규제를 추가했다. 이를테면 ‘성장제한growth cap'이라는 것이다.”

이 문장들은 현재 세계도시 서울을 만들기 위하여 활발하게 추진 중인 서울시의 도심재개발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수단 좋은 정치가들과 개발업자들의 영향권에 놓여 있는 서울이야말로 ‘성장제한’이 필요하다.

상당히 두터운 원서를 부지런하게 옮겨놓은 번역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와 같은 정치가들과 개발업자들로부터 운동을 통해서 성장제한을 쟁취할 불순한 의도에서 번역했을까? 80년대 녹두나 백의와 같은 인문사회과학출판사들에서 번역된 책들은 단순히 외국어를 한글로 옮긴 게 아니라 이러한 실천적 고민이 반영되었던 것을 회상한다면 그러한 심증은 더욱 강해졌다. 이명박식 법치시대에 이러한 불순분자를 이명박 정부가 과연 용인할 수 있을지 심히 걱정이 된다. 번역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나는 이 책을 번역하면서, 이 책이 우리나라의 건축과 도시계획, 조경 및 도시설계 관련 학자와 연구자, 학생과 실무에 종사하는 전문가, 그리고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진 보통 사람들이 우리가 사는 도시의 모습을 좀 더 정확히 인식하고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노력했다.

그래서 우리의 도시를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가는데 도움이 되고, 나아가 이 분야의 연구자들과 전문가들의 실무에도 보탬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나 막상 책을 번역해 놓고 보니 부족한 점이 너무 많아 독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지식소매상 유시민은 최근에 출간한 자신의 책이 주목받게 되면서 각종 강연회가 잡혔었다가 노무현 전대통령을 둘러싼 부패사건이 터지면서 ‘정치적 경호실장’ 유시민으로서 강연회 일정을 취소하고 활동을 자중하고 있다고 들었다.

나는 유시민의 이러한 행보를 두고서 참여정부의 도덕성이 아직 남아 있다면서 옹호할 생각은 없다. 다만 직접적으로 부패사건에 연루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지식인으로서 유시민은 최소한의 ‘염치’는 갖고 있었다는 것을 언급하고 싶었을 뿐이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이 글이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의아해 하는 독자들이 많을 거 같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앞서 소개한 책의 번역자를 소개할 필요가 있다. 책에 적혀 있는 약력을 그대로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환경대학원 도시계획학과. 미국 일리노이공대 대학원, 하버드 대학 설계대학원에 건축과 도시계획, 조경 및 도시설계를 공부했다. 이후, 미국의 S.O.M에서 건축과 도시설계 실무를 했다. 서울대학교 교수로 환경대학원과 건축학과에서 도시설계를 가르쳐 왔으며, 미국 워싱턴 대학 교환교수, 서울시 청계천복원사업본부장과 행정2부시장을 역임했다.”

이 책은 2009년 1월에 출간되었다. 그런데 번역자의 이력은 행정2부시장을 끝으로 그 이후가 생략이 되어서 아래와 같이 친절한 보충이 필요하다.

부정부패로 구속된 자도 장관급으로 임명하는 이명박 정부의 윤리성

번역자인 양윤재는 지난 2003년 청계천복원사업본부장으로 있으면서 당시 청계천 주변 재개발과 관련하여 개발업자로부터 층고제한을 완화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2억 원을 받는 등의 총 4억 원의 뇌물을 받아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로 구속기소되었고, 징역 5년형을 받았다가 이명박 대통령의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지난해 풀려났다. 그리고 넉 달 후에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관급 대우)으로 임명되었다.

유시민의 ‘염치’가 이명박 정부에서 얼마나 절실한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오랜만에 상기해보자면 청계천 복원사업은 자그마치 3800억 원에 달하는 서울시민의 혈세가 들어간 엄연한 공공사업이었다.

그런데 양윤재는 개발업자로부터 4억에 달하는 뇌물을 받아먹는 사익행위를 통해서 감옥에 들어갔던 사람인데 남아있던 징역을 마저 살지는 않고, 태연하게 장관급 대우를 받는 공직으로 화려한 컴백을 하였다. 이렇게 얼굴에 철판으로 코팅한 행보가 정녕 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에 걸 맞는 품위를 지킨 것인가.

한국사회 상위 지도층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상류층의 도덕적 책무)는 증발된 지 오래고, 그 아래 계층에서는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라는 말이 설득력 있게 배회하고 있다.

현재 검찰이 수사 중인 죽어있는 권력에 대한 조사는 살아있는 권력에의 부정부패에도 똑같이 적용할 것인지도 지켜보아야 할 것이지만, 양윤재와 같은 인물이 현 정권에서 태연자약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볼 때 현 정권이 ‘윤리’라는 단어를 과연 알고 있는지도 의구심이 든다.

다시 강조해서, 누구보다도 양윤재는 청계천 복원과정에서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의 행동대장으로 앞장서 시민단체의 의견을 묵살하고, 시공을 앞당겨서 청계천을 복원 아닌 왜곡을 초래했었다.

그것도 모자라 청계천 사업과정에서 수단 좋은 정치가들과 개발업자들의 영향에서 벗어나기는커녕 뇌물을 받아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이렇게 뻔뻔하게 “우리가 사는 도시의 모습을 좀 더 정확히 인식하고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노력”하고, “막상 책을 번역해 놓고 보니 부족한 점이 너무 많아 독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또한 양윤재는 자신이 다음의 335쪽을 번역하면서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그들이 사는 도시의 모습을 최종적으로 결정해야 할 사람은 집단적인 목소리를 내야하는 시민들이다. … 만약 우리가 도시라는 공동체가 우리의 가치를 품어주고, 우리가 함께 사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자리를 우리에게 마련해준다면, 도시를 설계하는 방향을 정하는 일은 우리들이 함께 책임을 질 것이다.”

만약 ‘염치 있는’ 양윤재였다면 속죄하는 마음으로 쓰다만 약력에 자신의 뇌물혐의로 구속되고, 정권의 은총으로 장관급 대우를 받는 감투를 받았다고 밝혔을 것이다. 그리고 옮긴이의 글에서 ‘생계 때문에 막상 책을 번역해 놓고 보니 제가 뇌물 먹은 먹물이라서 독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썼을 것이다.

번역을 반역으로 만드는 번역자의 윤리성도 중요하다

덧붙여 번역서의 출판사가 공간사였던 것도 씁쓸하다. 김중업과 함께 한국 건축역사에서 양대 산맥인 김수근의 주도로 1960년에 창립한 이래로 공간그룹은 일개 건축사무소가 아니라 월간 <공간>을 통해서 근 반세기동안 한국건축역사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공간>을 중심으로 당대의 건축담론논쟁을 주도했었던 공간그룹의 역사를 감안할 때 최소한 지식인으로서 절필 사유인 공공사업에서 뇌물로 구속된 자를 왜 하필 오랜만에 공간에서 출간된 훌륭한 원서의 번역자로서 마주쳐야 했는지는 오랜 독자로서 씁쓸할 뿐이다. 질 좋은 양서에 대한 번역자의 비윤리성이 번역을 반역으로 만들게 되었다. 이 서평이 첨이자 마지막으로 곤혹스러운 서평이길 바란다.

참여정부의 부패사건이 민주화 세대들에게 절망이었다면, 이명박 정부에서 버젓이 부패를 저지르고도 염치를 모르는 먹물이 한국사회를 얼룩지게 하는 것은 온 국민의 절망이다. 그나마 아주 최소한 양윤재의 미덕은 “도시의 모습을 최종적으로 결정해야 할 사람은 집단적인 목소리를 내야하는 시민들이다”라는 역설적인 번역문을 한글로 유포시킨 점이다.

시민들의 뇌리에서 희미해져가고 있는 용산참사를 반추하여 도시의 모습을 최종적으로 결정해야 할 사람이 바로 우리라는 자각이 필요할 때다.

2009년 05월 08일 (금) 12:02:58황진태 /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객원연구원 redian@redian.org
레디앙에 기고한 글입니다.

by 샤방샤방 | 2009/05/08 12:40 | 사회 | 트랙백(1) | 덧글(4)

이명박·오세훈·정명훈, 그들이 사는 세상

이명박·오세훈·정명훈, 그들이 사는 세상
청계천, 인천 그리고 용산



1970년대 서울시 중구 소공동에 롯데호텔이 세워진 것은 롯데 회장 신격호가 김종필을 비롯한 당대 정치 실세의 도움을 받은 것이 결정적이었다. 그로부터 30년이 흐른 2009년에는 제2롯데월드를 추진을 위해서 국가 안보마저 내팽개친 이명박 정부의 도움을 받았다. 예나 지금이나 서울은 자본과 권력의 공간으로 팽창 중이며 그 강도는 더 강해지고 있다.

최근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용산이라는 단어의 사용이 줄어든 것을 보면 용산 참사의 기억도 국민들의 뇌리에서 스멀스멀 사라지는 듯하다. 동시에 매우 자연스럽게 집값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용산 참사와 집 걱정은 서로 떨어져 있는 문제일까? 용산 참사는 자신과 무관하며, 누구나 먼저 돈을 모아서 집을 사면 괜찮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홍세화가 그토록 많은 강연을 다니면서 지겹도록 말하는 존재와 의식의 불일치를 일치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걸까? 혹 자본과 권력이 대세인 만큼 그 속에 파묻혀 사는 게 현명한 방법일까? 그러나 결국 극히 일부만이 혜택을 받을 것이고, 대다수는 제2, 3의 용산 참사를 겪기 전에는 용산과 다름없는 공간에서 불안하게 살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얼마 전 한 드라마의 제목이 "그들이 사는 세상(그사세)"이었다. 나는 근자에 청계천, 용산, 인천경제특구를 답사하면서 이명박, 오세훈, 정명훈 그들이 사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때로는 글보다는 사진이 현실을 더 잘 드러낸다.

용산 참사 이후의 모습, 청계천

▲ 청계천을 복원하는데 기여한 사람들의 명단에서 다른 이름들은 멀쩡한데 이명박 시장의 이름만 훼손되어 있다. '법치'가 강조되는 이명박 시대에 잡혀가면 어쩌려고 이런 범죄 행위를 저질렀다. ⓒ황진태
이명박이 대통령 자리를 얻을 수 있는데 기여했던 일등공신은 바로 청계천 복원 사업이었다. 서울을 경쟁력 있는 세계 도시로 만들기 위한 명분은 복원 과정에서 발생했었던 문화재의 왜곡된 복원과 서울시와 상인들 간의 갈등 등은 깔끔하게 지워졌으며, 현재 서울시민들과 외국 관광객들에게는 서울의 대표적인 관광명소가 되었다.

청계천 복원 사업을 보면 용산의 미래가 보인다! 청계천에 딱 붙어서 세워진 '롯데캐슬'은 신격호 회장이 롯데호텔과 제2롯데월드를 뚝심 있게 추진했듯이 그 위세를 자랑하고 있다. 그 위세가 얼마나 위풍당당하면, 청계천을 따라서 세워진 다른 초고층 주상복합 건물은 초라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크기에 내 카메라로는 일부분 밖에는 촬영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 사진으로 찍을 수 없을 정도로 큰 롯데캐슬. ⓒ황진태

▲ 우주선을 닮은 초고층 주상복합 건물이 건설 중이다. ⓒ프레시안
그렇다고 다른 초고층 주상복합 건물들이 괜찮다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건설 중인 건물은 마치 우주선과 같은 모양인데, 완공이 되면 그대로 우주로 날아갔으면 하는 상상을 해본다. 이들 건물들이 정말 우주 저 멀리로 날아간다면 최소한 청계천을 걸을 때 시민들이 병풍 같은 초고층 건물 때문에 햇볕을 즐기지 못하는 짜증은 겪지 않아도 될 것이며, 기존 거주민들도 계속 거주할 수 있도록 지금과 같은 지가 상승으로 고통 받지도 않을 것이다.

도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외국인 관광객까지 받아들이면서 끝내 받아들이지 못한 거주민은 어디로 갔을까? 청계천 복원 사업은 평범한 시민의 미래를 보여준다. 다음 사진을 보면 청계천 판잣집을 재현했다. 사람은 떠나고, 가난했던 시절은 그저 하나의 추억, 테마로 가공되면서, 장소 마케팅으로 활용되고 있다.

몇 십 년이 흘러서 롯데캐슬 건너편에 마주하고 있는 낙후된 아파트도 장소마케팅의 일환으로 일부는 복원될지 모른다. 물론 그곳에 본래 거주민은 살지 않을 것이다. 이제 자본과 권력이 스민 공간에 어울리는 배경 음악만 깔리면 되겠다. 청계천을 사이로 롯데 캐슬과 마주한 낙후된 아파트. 이 자리도 곧 재개발이 이루어질 것이다.

▲ 청계천을 사이로 롯데캐슬과 마주한 낙후된 아파트(왼쪽). 청계천 판잣집(오른쪽). ⓒ황진태

청계천과 용산에 울려 퍼질 정명훈의 음악

예전에 우석훈이 "극우파 예술전형"으로 정명훈을 지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고, 당시 서울시장 이명박에 의해 서울시향에 정명훈이 영입되면서 통하지 않을 거 같았던 이명박이나 오세훈과 오히려 너무 잘 지내는 게 기묘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최근 정명훈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레디앙>에 실린 목수정의 정명훈 비판 글을 보고서다. 그 기고문에 따르면 정명훈은 국립오페라합창단의 해체에 대한 서명과 연대를 부탁한 것을 거부하고, 더불어 막말까지 했다고 한다. 결국 정명훈과 합동 공연을 했었던 국립오페라합창단은 사라지게 되었는데, 그렇다면 정명훈이 바라는 예술관은 어떤 것일까?

정명훈은 1994년 자신이 몸담고 있었던 바스티유오페라에서 부당 해고를 당하고 노조의 도움으로 복권되었다. 그럼에도 그가 예술가의 노조 결성과 연대의 중요성을 학습하지 못한 이유는 그가 자신을 노동자로 생각하기 보다는 자본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비록 제1세계에서는 노동자에 불과했지만…. 그가 서울시향에 들어오자 노조 결성을 못하게 된 것도 이를 방증한다.

마침 필자가 전공이 지리학인지라 인천경제자유구역(IFEZ)을 10년 가까이 답사하면서 귀 기울이지 않았던 브리핑 내용이 이번에 또렷이 들렸다. 인천경제자유구역 홍보 직원에 따르면 인천경제자유구역 송도신도시에 짓고 있는 IFEZ 예술센터는 바로 정명훈이 투자했다고 선전하고 있었다.

▲ 노동권이 말소될 비즈니스 유토피아를 구축하고 있는 인천경제자유구역 현장. ⓒ황진태

인천경제자유구역은 전 국토의 전면적인 시장 개방에 직면해, 중앙정부가 특별히 선택한 신자유주의 공간이다. 이 신자유주의 공간을 구획 짓는 경제자유구역법은 무노조를 지향하는 정명훈에게 적합하다. 가령, 경제자유구역법 제19조는 "노동자는 노동쟁의에 관한 관계 법률상의 절차를 엄격히 준수하여 산업평화를 유지하도록"해야 한다면서 노동권이 행사되면 공권력 투입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서 노동권을 무력하게 만들 수 있다. 고로 정명훈에게는 '장사'를 할 인력을 끌어들이는 데는 제격인 공간이다.

"한국은 합창단 해체해도 다음 날이면 노래 잘하는 사람 500명 금방 모입니다." "내가 서울시향에 있는데 거기서 1년에 5~6명씩 해고당해요. 여기만 해고당하는 사람들 있는 거 아니에요. 지금 온 나라가 다 그러고 있는데, 합창단 하나 없어졌다고… 이 사람들이 여기까지 와서… 그리고, 도대체 나더러 뭘 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에 서명하라고?" (<레디앙>, 2009년 3월 23일 기고문 중)

정명훈은 정부에서 선전되듯이 '비즈니스 유토피아' 같은 말로 노동권이 제한받는 경제자유구역에서도 노래 잘하는 사람 500명은 금방 모일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경제적 상황이 어려워서 데카CD도 어렵게 중고로 모아서 들었던 필자를 포함한 클래식 리스너들, 혹은 노조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앞으로 보편타당하게 생각했던 정명훈의 음악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걸러 들을 줄 아는 청감(聽感)이 필요하지 않을까?

바그너의 음악이 나치 선전에 좋은 선전 도구가 이용된 것은 바그너에게는 억울하지만 '음악의 정치'가 가능함을 보여줬다. 한국 사회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나치 다큐멘터리를 만들며 능동적으로 영화계의 괴벨스가 되었던 독일의 여성 감독 레니 슈펜스탈처럼 의도적인 예술의 정치를 하고 있는 '음악의 정치가' 정명훈에 대한 비평이 필요하겠다.

▲ 인천경제자유구역 아트센터 조감도. ⓒ황진태

▲ 송도갯벌타워에 전시되어 있는 아트센터 모형. ⓒ황진태

세상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

용산 참사 이후에 어떠한 공간이 만들어질까, 스스로를 향한 질문은 답사를 하면서 청계천이 용산의 미래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청계천 복원 사업으로 떠난 거주민들, 용산 참사와 재개발로 떠나게 될 거주민들은 어디로 갔을까? 용산 참사가 발생한 건물에는 사진과 같은 글귀가 걸려 있다. 바로 오세훈에게 돌려주고 싶은 말이다.

"세상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입니다." 그런데 어째 오 시장은 이 말이 익숙하게 들렸을 거 같다. 2007년 한 기자회견에서 오세훈은 "주택은 사는 것 아닌 사는 곳"이라고 말한 바 있다.

▲ "세상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입니다." ⓒ황진태

최근에 종영된 '그들이 사는 세상'은 현빈, 송혜교 등의 기라성 같은 스타들이 주연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마니아에게만 사랑을 받고서 아쉽게 끝났다. 이명박, 오세훈 주연에 음악은는 정명훈까지 현재 절찬리에 서울 공간에서 발생하고 있는 그들이 사는 세상도 무노조와 자본 숭배자 등의 일부 소수 마니아들만에게 사랑을 받다가 조기 종영되길 간곡히 바란다.

/황진태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객원연구원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프레시안 2009년 4월 10일자에 기고한 글입니다.

by 샤방샤방 | 2009/04/10 10:17 | 공간+지리 | 트랙백(1) | 덧글(0)

기후변화와 4대강 살리기 사업은 무슨 관계?

기후변화와 4대강 살리기 사업은 무슨 관계?

지난 3월 22일은 물의 날이었다. 때마침 당일에는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비가 내려 강원도를 비롯한 가뭄으로 고통 받는 지역에서 조금이나마 해갈이 되길 빌었다.

지금 우리에게 닥친 물 문제는 기후변화로 인한 지구온난화로 강수패턴이 불규칙해짐에 따라서 과거처럼 기우제를 통해 신에게 비는 것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구조적으로 고질화된 문제가 되었는데 이에 대한 해결은 과학적인 예측에 기반한 물의 수요와 공급방식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도 이러한 문제의식에 있어서는 필자와 비슷해 보인다. 가령 4대강 살리기 사업의 추진배경으로 “최근 지구온난화 등으로 홍수 및 가뭄 피해가 빈발함에 따라 근원적인 대책 마련 필요”하다면서 근자의 기후변화에 대한 정부의 고민이 그러하다. 그러나 기후변화에 대한 필자와 동일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해결방식은 다른듯하다. 대체 기후변화와 4대강 살기기 사업은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

국토해양부에서 발표한 4대강 살리기 사업내용 발표자료를 살펴보면, 지구 온난화로 촉발된 홍수와 가뭄해결책은 “「물부족국가」인 우리나라는 ’11년 약 8억㎥의 물부족이 예상되나 다목적댐 건설 반대로 가뭄때 마다 제한급수 등 피해 발생”한다면서 다목적댐 건설이 그 해결책으로 제시되었다.

과연 다목적댐 건설로 지구 온난화에 대비할 수 있는가? 여기서 지난 2000년에 설립되어 최근까지 지속가능한 발전과업을 수행했었던 대통령자문 지속가능발전위원회(이하 지속위)의 한 보고서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2006년 지속위에서 발간된 <국가지속가능발전전략및이행계획(Ⅰ)>에서는 그간 정부의 물정책을 검토하였다. 보고서는 건설교통부(현 국토해양부)의 ‘11년 18억톤 물부족, 댐건설 필요주장’과 이러한 건교부의 물부족론은 과장이기 때문에 추가 댐건설은 불필요하다는 환경시민단체의 주장을 균형 있게 정리하고서, 결론적으로 ‘댐개발에서 댐관리’로의 정책전환이 필요함을 제언했다.

이 보고서는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의 핵심인 댐건설을 재개해야 한다는 이명박 정부의 토건지향성과 정면충돌한다. 정부와 대척점에 있을 환경시민단체에서 나온 보고서도 아니고 다름 아닌 바로 대통령 자문기구에서 제출된 문건임에도 불구하고 묵살된 것이다.

앞으로 지속위가 녹색성장위원회(이하 녹색위)에 편입된 이후에도 이러한 논조의 보고서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특히나 최근 지속위가 그 규모가 축소되고, 녹색위로 편입된 사건을 통해서 지속위가 이명박 정부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지난 겨울부터 시작해서 현재까지 강원도에서 겪고 있는 물 부족 사태에 대한 대책 또한 이 보고서에는 방안이 밝혀져 있다. “대규모댐 건설보다 소규모댐, 식수용저수지, 대체수자원 등 물부족 지역특성에 맞는 환경친화적 수자원 개발이 필요”하다. 요컨대 정부가 지속위의 고언을 들었다면 이번 물사태는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이지만, 정부의 의지에 따라서는 충분히 막을 수도 있었던 인재였었다.

국토해양부가 발표한 4대강 살리기 자료의 내용을 정리하면, 정부가 기후변화의 문제의식은 갖고 있지만, 기후변화에 대한 해결책은 담겨있지 않았으며, 고작 다목적댐 등을 비롯한 갖가지 크기의 댐을 만들어 기후변화로 야기될 홍수와 가뭄에 사후적으로 대처하자는 주장으로 요약됨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기후변화에 대한 대책은 지속위에서 발간된 보고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댐건설은 그 효과가 없는 것으로 판명 났다. 최소한 형식상으로나마 정부는 기후변화가 4대강 살리기 사업 추진의 가장 중요한 배경으로 앞세운 만큼 그 주장의 증거를 밝히고 있는데, 그것은 아래와 같이 한 줄로 간단히 언급됐을 뿐이다.

“태양광 및 소수력 발전으로 신재생에너지 생산, 생태습지 및 하천숲 등과 함께 CO2를 저감”

지난해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와 창원에서 개최된 람사회의에서 학자들과 환경단체들로부터 4대강 살리기 사업이 기존 습지들을 파괴할 거라는 따가운 지적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생태습지 또는 하천숲 등의 낯 뜨거운 사후약방문을 언급하고 있는 그 철면피가 신기하다. 어쨌거나 4대강 살리기 사업이 기후변화에 대한 “근원적 대책”이라고 말하면서까지 잔뜩 부풀리고서는 고작 이 한 줄을 언급하여 맥이 빠졌다.

결국 국토해양부 발표 자료의 핵심은 기후변화 뒤에 끼워진 “침체된 실물경기 회복을 위해서는 하천정비 등 SOC사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여 신규 일자리창출 및 내수진작을 도모”하고, “또한 하천을 이용한 다양한 수상레져 ․ 문화활동 공간 및 프로그램을 개발함으로서 지역경제 활성화 기반 마련 필요”하다면서 결국 4대강 살리기가 “신규 취업 19만명 창출 및 23조원의 생산유발효과 발생 등 한국판 녹색뉴딜 정책으로 지역경제 활성화를 견인”할 것이라는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추진이 주목적인 듯싶다.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서울대 환경대학원 윤순진 교수가 최근에 정부가 강조하는 기후변화와 4대강 살리기 간에 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것을 듣고서, 필자도 과연 상관이 없는지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그래도 최소한 정부 산하의 씽크탱크들이 동원되었으니 그럴싸한 논리는 있지 않을까 하는 게 내 추측이었다.

그러나 이 추측은 그야말로 ‘오버’였다. 이젠 세련된 논리를 만들기도 포기한 듯싶다. 기후변화 전문가가 아닌 필자가 보기에도 결국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녹색성장에서 ‘녹색’이 콘크리트를 위장하는 보호색이 된 것처럼, 4대강 살리기 아니 4대강 죽이기를 위한 콘크리트를 가려주는 또 하나의 녹색으로 기후변화가 이용된 것으로 보인다.

기후변화로 인하여 봄 같지 않은 봄을 보내면서 기후변화의 중요성을 몸으로 느끼는 지금,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마저 정부의 정책추진에 의해 왜곡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2009년 04월 03일 (금) 10:41:36황진태 /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객원연구원 redian@redian.org

레디앙 4월 3일자에 기고한 글입니다.

by 샤방샤방 | 2009/04/03 12:51 | 공간+지리 | 트랙백(1) | 덧글(1)

워낭소리 대신 망치소리를…'새마을운동'의 귀환




<워낭소리>의 흥행 성공은 이명박 대통령의 관람을 기획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앙증맞은(?) 정치적 이벤트를 낳으며 큰 화제가 되었다. 혹시라도 <워낭소리> 비평을 읽고 싶었던 독자라면 이 글을 읽을 필요는 없다. 여기서 나는 이명박 정부의 지속가능한 발전의 방향을 묻고자 한다. 사실 이 물음은 <워낭소리>와 통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1987년 유엔의 <우리 공동의 미래> 보고서는 "미래 세대가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능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재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발전"이란 의미로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 개념을 제시했다. 이는 경제, 사회, 환경의 삼위일체를 통해서 지속가능한 지구의 미래를 보장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국가의 정책 실행 과정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은 '현 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제멋대로 사용되곤 했다. 이 때문에 환경단체 등에서는 정부의 지속가능한 발전 구호를 개발을 합리화하려는 이데올로기라고 비판했다. 이런 비판 속에서 2000년 6월 5일 세계 환경의 날을 맞아 대통령 자문기구로 '지속가능발전위원회'가 출범했다.

올해 초 이명박 정부는 지속가능발전위원회, 국가에너지위원회, 기후변화대책위원회를 통합해 녹색성장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이는 국가인권위원회 축소에 비견할 만한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축소로 볼 수 있다. 그동안 지속가능발전위원회가 제기했던 모기 같은 목소리조차도 이번 조직 개편을 통해서 없어질 것은 뻔하다.

실제로 이번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조직 개편으로, 이 위원회가 발주한 사업의 상당수가 중단을 통보받았다. 몇 달간 사업이 연기된 것이라고 하나, 사실상 사업 재개가 불투명한 상태다. 또 설사 재개된다 하더라도 또 다른 '입김'을 받아서 사업 방향에 변화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그동안 지속가능한 발전 구호는 개발을 위한 '물 타기'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마저 축소하면서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려는 '녹색 성장'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명색이 대통령 자문 기구인데도, 이 녹색성장위원회는 사람 채우기에 바빠서인지 아직까지 홈페이지 하나 제대로 구축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이 녹색성장위원회의 수장의 발언을 통해서 '녹색 성장'의 심오한 의미를 파악할 수밖에 없다. 그간 한국 공간 환경 연구자로서 많은 업적을 제출해 개인적으로 존경하던 서울대 환경대학원 김형국 교수가 얼마 전 지속가능발전위원회 위원장에서 녹색성장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김 교수는 녹색성장위원회 창립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탄소 녹색 성장은 환경과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창출하는 것으로, 환경 훼손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은 대규모 토목 공사뿐 아니라 환경·에너지 분야와 강하게 연계되어 있어 녹색 성장의 중요한 기반이 된다."

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현재까지 망가지고 있는 일군의 지식인을 보면 요즘 말로 '대략 난감'한 상황인데, 김 교수의 남은 임기 동안 또 얼마나 많은 지식인이 망가질지 걱정이다. 다만, 이명박 정부 들어서 망가지는 지식인의 행보를 관찰하는 것은 지식사회학적으로 아주 흥미로운 연구 주제다.

다시 워낭소리를 들어보자. 이명박 대통령은 <워낭소리>를 관람하러 간 자리에서 감독에게 '영화를 만드는 데 돈이 얼마나 들었느냐' 하면서 수지타산에 관심을 둔 질문을 했다. 현 정부의 지속가능성은 돈이 되느냐, 안 되느냐만 관심을 갖고 있다. 이 대통령은 청와대 직원에게 단체 관람을 지시할 정도로 <워낭소리>와 통했다.

도대체 어떤 부분에 마음이 동했을까? 아무래도 이런 게 아니었을까? 느리게 이동하는 소달구지, 손으로 벼를 수확하는 노인, 꾸불꾸불한 시골길, 시작부터 끝까지 졸음이 밀려오는 워낭소리로 가득 찬 영화를 보면서 이명박 대통령은 워낭소리 대신 "전국 곳곳에서 건설의 망치소리"가 들리는 자신의 '녹색 성장'을 한 번 더 마음에 새기지 않았을까?

이제 우리는 '녹색 성장'의 이름을 단 새마을운동의 귀환을 볼 모양이다.


2009.3.20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입니다.

by 샤방샤방 | 2009/03/22 12:07 | 사회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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